우동 한 그릇이
건너온 길
4000년 전 · 중국 황하 상류
지진이 마을을 덮쳤습니다.
그릇 하나가 엎어진 채 흙에 묻혔습니다.
2005년, 그 그릇을 열었습니다.
안에 국수가 들어 있었습니다. 조와 기장으로 뽑은 가는 면.
누군가의 저녁이었습니다.
4000년을 건너, 그릇째.
821년 · 일본 사누키
홍수로 저수지 둑이 무너졌습니다.
조정이 사람을 보냈지만 3년이 지나도 공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카이라는 사람이 내려옵니다.
그가 맡은 뒤 석 달 만에 둑이 섰다고 전합니다.
비결은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먹인 것이 국수였다고 전해집니다.
우동은 그렇게, 일하는 사람을 먹이는 음식으로 시작했습니다.
1985년 · 한국 대전역
증기기관차는 150킬로마다 화차를 갈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기차가 대전역에 오래 섰습니다. 5분 넘게.
그 5분에 사람들은 플랫폼으로 내려왔습니다.
가락국수 한 그릇에 400원.
후루룩 넘기고 다시 기차에 올랐습니다.
긴 길에서 가장 따뜻한 5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기차가 2분밖에 서지 않으니까요.
나루터
대전역도 나루터였습니다.
배가 닿는 자리이고, 배가 떠나는 자리.
오래 흔들리다 겨우 닿은 사람이 있습니다.
숨도 고르기 전에 다시 떠나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뜨거운 것 한 그릇.
4000년 동안 사람들이 해 온 일입니다.
그런데 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24년을 목회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말로 먹였습니다. 그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담임목사가 손수 끓여 준 음식을 먹어 본 기억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빈자리가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목사라는 이름에 상처 입은 분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말로 풀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에 끓입니다
주중 내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신 분들께
한 시간 반,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어디서 오셨는지,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값도 받지 않습니다.
드시고, 편히 가시면 됩니다.
나루만의 맛
최고의 맛은 아닙니다. 최선의 맛입니다.
책 한 권을 펴 놓고 한 그릇씩 익혀 갑니다.
서툰 주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정성은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그 긴 길이 물려준 좋은 마음을 이어받아,
나루만의 맛을 찾아가려 합니다.
먼 훗날 따라온 아이가
“그때 그 우동 참 맛있었다”고 기억해 준다면, 그걸로 됩니다.
이 일에는 오래된 이름이 있습니다.
환대입니다.
나루 우동은 장사하는 식당이 아닙니다.
토요일 아침 한 시간 반, 이웃에게 한 그릇을 대접하는 자리입니다.